촌스럽지만 그게 멋있다! 50년 대의 로큰롤

미디어 피쉬

MediaFish

로큰롤의 탄생을 말하기 위해 대략 1950년대로 돌아가겠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가 해방된지 대략 100년 정도 지난 때였죠. 인종차별이 대놓고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재즈와 블루스 등의 흑인 음악은 하위 문화였죠.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로큰롤(rock and roll) 역시 흑인 문화에 빚지고 있습니다. 당시 블루스 음악이 나오는 조금 질펀(?)한 파티에서 인기를 끈 춤의 이름이 로큰롤이었죠. 이미 아시겠지만 블루스란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나 민요로부터 시작된 음악입니다.

블루스는 아프리카 스타일의 음악이 미국에서 뿌리내린 장르죠. 그냥 지나가기 아쉬우니 아직 노동요의 전통이 남아있던 시기, 1912년, 블루스의 아버지 윌리엄 크리스토퍼 핸디W.C Handy의 <Memphis Blues>를 들어봅시다.

이 곡의 제목이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 이름을 시작하게 했다는 설이 유력하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리듬 앤 블루스’라는 것은 이 블루스가 40년대쯤 와서 일렉트로닉 기타와 결합된 이후의 스타일을 칭합니다.

여튼, 젊은 백인들은 흑인 가수가 노래를 불러주는 파티에서 선정적인 춤을 추곤 했습니다. 감고 돌리는 그런 춤이었다는데요. 엄밀히 말하면 이런 식의 파티 댄스는 40년대부터 있었지만 조금씩 스타일을 달리해가면서, 50년대에 로큰롤이란 이름으로 유행하던 것이 있던 거죠. 로큰롤이 아직 음악적 용어로 정립되기 전, 일종의 퇴폐적이고 저급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뭐랄까, 억지로 예를 들자면 ‘부비부비’라는 말이 나중엔 음악 장르가 된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춤 말고, 음악으로서의 로큰롤의 시초를 명확히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언제나 뭔가의 시초, 창시자를 말하려고 하면 힘들어요. 여러 록 덕후들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기 때문… 이 아니라, 로큰롤은 무엇을 정의하는 단어라기보다는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좋은 마무리였다.

의견들을 종합해보겠습니다. 방금 말한대로, 유명 디스크 자키였던 앨런 프리드가 1955년에 새로 인기를 끌던 춤에 로큰롤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시초로 볼 수 있고, 바로 그 해에, 빌 헤일리의 <Rock Around the Clock>이라는 로커빌리 곡이 공전의 히트를 친 것도 시초라면 시초입니다.

bill-haley-and-his-comets-rock-around-the-clock-decca-2

<Rock Around the Clock>은 영화 <폭력 교실 Blackboard Jungle>에 삽입된 곡입니다. 50년대 미국의 청소년들의 반항을 다룬 영화로 실제로 청소년의 폭동을 야기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 곡은 아직까지 유명한 데다 언제 들어도 좋으니까 한 번 듣고 갑시다. 다만 빌 헤일리가 섹시하게 생기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10대에게 어필하기엔 왠지 너무 어른 사회의 일원인 것 같고. 그런 것 때문에 인기가 줄었다고도 하죠.

얌전해야 하는 젊은 백인 여성들이 껌 짝짝 씹고 있는 거 보이시죠? 얼마나 좋았겠어요? 이런 음악이 전달하는 분위기란 것은, 술 마시고 난잡하게 놀아도 괜찮다는 거였어요. 매일 저녁 정찬 차려놓고 기도하는 집안 분위기에, 교회나 학교 좀 땡땡이치면 엉덩이나 맞던 보수적인 기독교 사회에서 말예요. 기독교 문화를 말하면서 스팽킹을 빼놓을 수 없죠. 이왕 삼천포로 빠진 거, 이 당시 백인 기독교 사회에서 약자(백인 이성애자 기독교 남성을 제외한)로 산다는 것의 깝깝함을 보여주는 기사 하나를 보여드릴게요.

article-2408041-1B8E628C000005DC-889_634x994

50년대 남자들은 필요하다면 여성의 엉덩이를 때려서 훈육(…)하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토론했고, 여기 나온 네 명 다 필요하다고 대답했네요. 여튼 이런 시기였어요. 이 당시 코미디 영화나 드라마보면 그냥 좀 웃기겠다고 별 이유없이 어린애들이나 여자들의 엉덩이를 때리는 씬이 부지기수로 나왔어요. 다리를 버둥대서 여러 겹의 풍성한 패티코트를 펄럭이며 비명을 질러대는 모습이 꽤 재미난 구경거리였던 거죠[2]. 즉 이런 보수적(이라기보다는 실은 미개하고 잔인한)인 사회는 청소년들에게도 아주 곤욕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속하다고 여겨지던 흑인을 일부러 흉내내며 반항하는 것이 짜릿했지요.

관점에 따라서 빌 헤일리보다 더 전, 1951년 백인 가수 조니 레이[3]가 흑인 샤우트 창법을 모방하던 것도 로큰롤의 시초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우세한 의견은 역시 엘비스겠죠. 음악 장르로서의 로큰롤의 시작, 그러니까 로커빌리 뮤지션으로서의 핵심 인물, 후대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을 꼽아야 한다면요.

a0104054_4c68cb80cd481

로큰롤은 하위의 흑인 문화였는데 어째서 백인 기독교 신자인 엘비스 프레슬리가 로큰롤의 시초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로큰롤이 거대 백인 자본에 의해 ‘상품화’가 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하죠. 엘비스를 발굴해 낸 썬 레코드의 샘 필립스는 항상 흑인 사운드를 낼 백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 백인을 찾는다면 10억 달러를 벌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죠. 당시 백인 십대는 보수적인 기성 세대에 반항하고는 싶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흑인들과 동일한 취급을 받고 싶지도 않았지요. 흑인 문화를 즐기는 건 일종의 일탈이었던 겁니다. 즉 흑인스러운 백인 영웅이 필요하던 시점이었죠.

1953년, 엘비스가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드릴 레코드를 녹음하기 위해 멤피스 레코드 서비스-나중엔 썬 레코드가 되죠-에 갔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때 바로 가수가 된 건 아니지만, 결국은 샘 필립스의 눈에 띄어 록 역사의 첫 발자국을 찍었죠. 흑인 사운드를 구사하는 백인 기독교 청년 엘비스가 나타났던 겁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흑인의 정신이 로큰롤이었는데, 그것이 자본과 결합하여 대중에게 봉사하기 시작한 시점이 음악 장르로써의 로큰롤의 탄생이라니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로큰롤로 시작한 저항의 록이 왜 결국은 대중 예술인가에 대한 중요한 답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웬걸, 1955년에 레코딩한 엘비스의 첫 앨범은 컨트리(!) 음악이었어요. 컨트리 앤 웨스턴이라니! 주류 백인 음악이죠! 바로 <I forgot to remember to forget>이라는 곡이었습니다.

220px-Elvis-presley-scotty-and-bill-i-forgot-to-remember-to-forget-sun

 

이 앨범에서 스코티 무어가 내쉬빌 스틸 기타를 연주했고, 베이시스트인 빌 블랙이 리듬을 연주했어요. 아니 그런데 보니까 앨범에 엘비스, 스코티, 빌의 이름은 찍혔는데 드러머인 조니 버네로를 안 써놨어요! 드럼 무시하냐능. 여튼 이 음악은 대히트를 쳐서 빌보드 컨트리 뮤직 차트에서 1위를 하죠.

하지만 뒤집어보면 어떨까? B면에는 <Mystery Train>이라는 곡이 녹음되었는데 이것은 빌보드 컨트리 뮤직 차트에서 11위를 한 음악입니다. 하지만 정작 들어보면 로커빌리 느낌이 강해요. 즉 한 면은 컨트리풍으로, 다른 한 면은 로커빌리풍으로 간 거예요. 영리한 전략이죠. 하긴, 이때 백인들의 로커빌리에는 컨트리 풍이 꽤나 섞여 있으니 구분하긴 좀 애매하겠군요.

엘비스라고 하면 역시 다리를 덜덜 떨어대는 특유의 스타일이 포인트죠. 그런데 그 동작은 엘비스가 처음 많은 관중 앞에서 공연하던 때, 너무 떨려서 시도한 거라고 하네요. 그가 다리를 떨어대자, 통 넓은 바지가 볼만하게 펄럭거렸고, 여성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나요.  그럼 그가 다리를 떨어대던 그 섹시한 동작이 뭔지 봅시다.

어떡하지. 이거 진심으로 멋있어. 여튼 엘비스가 부르는 이 곡은 <Blue Suede Shoes>라는 곡인데요, 원래는 칼 퍼킨스의 곡이죠. 역시 썬 레코드에서 녹음한 거예요. 이 곡이 워낙 괜찮아서, 엘비스도 여러 번 불렀습니다.

한 곡만 더 듣고 갑시다. <Jailhouse Rock>이란 곡인데, 들으면 이게 바로 로커빌리구나! 싶은 곡입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로큰롤이 백인 사회와 만나면서 컨트리와 접합된 스타일이란 게 있었는데,  칼 퍼킨스도 그 예였어요. 리듬 앤 블루스 곡들을 컨트리 풍의 곡과 섞고, 가사는 개신교 사회에서 수용할 수 있을 범위 내로 필터링하는 거죠. 그냥 지나가긴 아쉬우니 칼 퍼킨스의 <Glad All over> 를 들어봅시다.

위에서 말한 빌 헤일리도 이렇게 컨트리와 로커빌리를 섞은 풍이라 볼 수 있고요, 행크 윌리엄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뭔가 요들송 창법(?)이 결합된 행크 윌리엄스의 곡을 하나 들어봅시다. <Jambalaya on the Bayou>란 곡입니다. 들으면 딱 컨트리예요. 하지만 <Move it on Over> 같은 곡은 또 은근히 로커빌리죠.

초기 로커빌리는 백인 사회로 번지면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일탈을 부추겼어요. 자유 연애! 술! 마약! 무절제한 파티! 야한 춤! (지금 보면 야하기는 개코… 싶지만요) 이런 식으로요. 그러다보니 흑인들의 정서였던 심각하고 저항적인 블루스적 감성은 많이 탈색되고, 중산층의 백인 10대가 좋아할만한 별 내용 없는 흥겨운 음악이 인기를 끌게 된 거죠.

딱 요런 스타일의 음악이 뭐였나, 샘플 한 번 듣고 갑시다. 진 빈센트Gene vincent의 <Be Bop  A Lula>를요. 진 빈센트 정말 귀엽게 생겼어요. 지금 봐도 잘생겼음. 보조개 봐요.

보컬 중간중간 삽입되는 ‘끽?’ 하는 까마귀 창법(?)도 정말 매력적이죠. 잘 부르는 보컬이란 원래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를 내면 안 되는데, 일부러 마이크를 통해 이 숨소리를 집어넣어서 나름의 보컬 스타일을 만든 거예요. 그리고 기타 플레이어들의 저 흥겨운 어깨춤! ㅋㅋㅋㅋㅋ 아 넘 신남. 전 진 빈센트가 눈 살짝 풀고 부르는 표정도 아주 좋아하고, ‘she’s my baby’ 부분을 지르려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눌러주는 특유의 창법도 섹시해서 좋아해요. 중간에 피아노 솔로가 또 로큰롤 스타일이니 들어주고 갑시다.

이제 바야흐로 씽나! 연애하자! -> 연애? -> 발라드! 이런 느낌의 시대가 됩니다. 한국에서야 발라드는 사랑 타령하는 서정적인 대중 음악이란 이미지(…)가 있지만, 리듬 앤 블루스의 한 계보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죠. 경쾌하고 빠르고 반복적인 발라드도 있다는 뜻이예요. 물론 더 과거로 가면 발라드란 단어에는 서사적 음유시라는 뜻도 있지만 그건 거의 어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음악적 형식과는 연관이 멀어지죠. 그러니까 굳이 거기까진 되돌아가진 맙시다.

여튼 이 시기의 발라드는 화음이 아름답고 싱코페이션 등의 기교를 부리는 음악이었습니다. 워낙 10대에게 인기가 많아서, 10대 시장을 겨냥해 곡을 쓰는 전문 작곡가, 작사가 팀들이 나왔어요. 작곡에서도 대중 음악의 요소인 대량 생산 체제로 또 한 번의 전환이 있었던 거죠.

이 당시 미디어라고 하는 것은 주크박스를 비롯, 라디오와 레코드였습니다.

1950s_jukebox

jukebox 앞에서의 1950년대 로큰롤 스피릿.

그러다보니 디스크 자키의 권력이 엄청났어요. 잘 나가는 디스크 자키는 한 뮤지션을 띄워주거나 묻어버리거나 할 수도 있었다고 하죠. 그 유명한 척 베리Chuck Berry도 디스크 자키인 앨런 프리드 덕에 히트를 하게 된 거였다고 하네요. 즉 앨런 프리드가 척 베리의 노래를 집중적으로 틀어주는 대신 음반 판매 수익금을 나누는 겁니다. 요즘 미디어와 뮤지션, 또는 기획사와 뮤지션이 계약하는 거랑 같은 거죠. 앨런 프리드는 위에서 말했던, 야한 파티 댄스에 로큰롤이라고 이름 붙인 바로 그 사람입니다.

여튼 또 지나가기 아쉬우니 척 베리의 전설적인 곡을 한 번 듣고 갑시다. <You Never Can Tell>이에요. 영화 <펄프 픽션>의 유명한 트위스트 장면에서 나오기도 했죠. 전 그 장면에선 비싼 밀크셰이크에서 더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요. 우마 서먼과 존 트라볼타도 볼 겸, <펄프 픽션> 버전으로 보시죠.

그러고보면 로큰롤은 리듬 앤 블루스, 컨트리의 혼합물이에요. 심지어 가스펠도 혼합됨. 이런 로큰롤 자체도 또 몇몇 하위 범주로 분화되죠. 같은 로큰롤이라고는 하지만 폴 앵카의 점잖은 <Diana>와 리틀 리처드의 로큰롤에는 많은 차이가 있잖아요?

그럼 타락한 흑인 설교사인 리틀 리처드의 <Long Tall Sally>를 들어봅시다. 피아노 앞에서 엉덩이를 비벼 흔들어대다니 정말로 타락했군요 이 사람!

이제 로큰롤은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유럽으로 가서 분위기가 좀 유려해졌어요. 클리프 리처트가 그 예입니다. 클리프 리처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착한 버전인 거죠. 정말 유명한 명곡들을 많이 냈어요. 아직까지 축하곡으로 쓰이고 있는 <Congratulations>도 클리프 리처드 곡이에요.

클리프 리처드의 음악적 완성도를 하나 알아보기 위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 삽입된 <Early In the Morning>을 들어보고 가시죠. 1969년 한국의 이화여대에서 공연 온 클리프 리처드가 이 곡을 부르는 모습입니다. 클리프 리처드, 정말 멋지군요.

곡이 정말 드라마틱하고 세련되었지요? 미국과는 다른 유럽의 감성이 있죠. 로큰콜, 로커빌리는 미국에서 시작된 것인데, 이렇게 영국으로도 넘어온 것은 큰 의미가 있어요. 실질적인 록의 전설은 영국에서 싹 트니까요.

여튼 이렇게 로큰롤은 여러 결합과 분화를 겪으며 진행되어갔으나 50년대 말부터 60년대로 초반까지 그 생기를 잃습니다. 왜 식었느냐?! 유명 로큰롤 스타들이 다 망했거든요. 그 타락한 목사, 그 난잡한 분위기의 로큰롤을 하던 리틀 리처드는 50년대 말에 목사가 되겠다며 로큰롤을 그만 두었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군대에 갔으며, 톰 파커는 부대 지휘관의 딸과 결혼해서(대위의 딸도 아니고…) 매니저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로크롤 정신은 없는 로큰롤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건 양반이네요.

그리고 제리 리 루이스도 열 세살 먹은 사촌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질타를 받고 명성이 식었으며, 59년엔 버디 홀리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죠. 척 베리는 사소한 잘못이 인종주의적 재판으로 날조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흑인이 스타 노릇을 하는 걸 눈 뜨고 못 봐주겠다는 거였을까. 게다가 진 빈센트는 사고를 당해 장애자가 되었지요. 아아, 저 귀여운 진 빈센트가. 이건 뭐 로큰롤 전체에 대한 저주라고 할 수밖에.

저는 버디 홀리를 특히 좋아하는데요. 비행기 사고로 죽다니. 마지막으로 듣고 가십시다.

아아, 찰지다.

이렇게 로큰롤은 50년대 말과 60년 초반까지 분위기가 완전 죽었어요. 물론 다른 가수들이 명맥을 이어나가긴 했지만, 영웅들은 대거 사라진 거죠. 그러다 다시 반전이 일어납니다. 1963년, 반제도권적인 성격을 처음으로 내비쳤던 저항가요가 등장한 거죠. 로큰롤 정신이 부활한 겁니다.

언제 다시 쓸 지는 모르지만 다음 시간에는 60년대의 록, 전설의 시작을 다뤄보도록 합시다.


참고:

[1] 알랭디스테르, Rock의 시대, 저항과 실험의 카타르시스, 성기완 역, 시공사

[2] 여성의 엉덩이를 때려서 혼내주는 장면이 흔하게 대중매체로 나왔다는 게 거짓말 같겠지만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유튜브 링크 하나 겁니다.

[3] Johnnie Ray가 흑인 창법을 따라하던 곡, 제목부터가 적절한 <Cry>하나 링크합니다.

 

← Previous post

Next post →

1 Comment

  1. 다음 편은 언제 기재예정인가요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