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피쉬

MediaFish

과학이 예술의 질료가 된다?

예술에 ‘과학’이 개입하는 순간이란 어땠을까요?

이전까지만 해도, 예술과 과학은 접점이 없었습니다. 서로 거리가 먼 영역이었죠. 사실 고전 예술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조차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상적인 가상을 추구했죠.

그러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의 등장은 세상을 깜짝 놀랄만큼 빠르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세상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들의 개념도 바꾸어놓았죠. 예술가들은 기계에 주목했고, 매료되었습니다. 현대 예술의 핵심은 ‘개념’이라고 했으니, 산업혁명과 기계로 인해 등장한 개념들이 예술을 얼마나 격변시켰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um Gabo

구축주의는 1913년 러시아에서 형성된 추상미술운동으로, 예술이 과학과 기술의 혁신을 닮으려고 한 예술운동입니다. 그래서 산업적인 재료를 사용하거나, 과학기술의 과정을 모방하려고 하였죠. 1920년에 제작된 나움 가보의 <키네틱 구조물Kinetic Construction>을 보십시오. 전기를 이용하여 움직이면 부피를 가진 조각이 됩니다. 물론 이 조각의 모습은 전기를 끌 때 사라집니다. 하나의 선만 남아있게 될 뿐이죠.

위의 나움 가보의 ‘조각’ 작품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바로 ‘질료의 비물질성’입니다. 과거엔 어느 누가, 움직임의 궤적을 조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요? 이제 예술이 돌이나 물감 등의 물질적 질료로서 고정시킨 것이라는 개념도 해체되었습니다. 비물질로도 예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술의 질료로서 가장 많이 사용된 비물질은 아마 ‘움직임’과 ‘빛’일 겁니다. 다시 다루겠지만 영상예술이 바로 그러한 예술이 되겠죠.

바우하우스1)의 사진 이론가 라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Nagy의 <Light-Space Modulator>는 그림자를 질료로 삼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물리적인 오브제 뿐만이 아니라, 빛의 색과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비물질의 그림자 영역까지 하나입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어디에 가져다 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수없이 많은 사진이 되기도 하죠. 여기서 유명한 드립을 쳐보고 싶어지네요. “나는 단수가 아니다.” 물론 예술 작품은 단수가 아닙니다.

Licht-Raum-Mod-László-Moholy-Nagy-Light-Space-Modulator-1922-1930-536x761

이제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과학적 지식이, 창조적인 상상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짚어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건조한 과학적 사실이 예술가의 상상력을 메마르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 아트를 하는 예술가들은 과학기술이 오히려 창조적 상상력을 끌어올린다고 말합니다. 정말 개념을 다룰 줄 아는 예술가라면, ‘과학’조차 풍부한 질료로써 사용해버리고도 남을 테니까요.

3. 속도, 움직임, 뷰, 시간

Umberto_Boccioni

이것은 미래파 작가인 움베르토 보초니의 1910년 작품 <The City Rises> 입니다. 무엇을 그리려고 했길래 이리 어지러운가 하면, ‘움직임’, ‘속도’ 등을 그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역동성, 빠르게 변하는 도시를 그리려고 한 것입니다. 미래파들은 기계의 속성으로, 속도, 움직임, 운동, 역동성 등을 꼽았습니다. 그것이 곧 기계에 대한 미학이었죠.

Giacomo Balla

위는 역시 미래파 작가인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의 1912년도 작품, <가죽끈에 매인 개의 역동성Dynamism of a Dog on a Leash>이라는 작품입니다. 귀여운 작품이라서 좋아합니다. 속도를 표현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소재로 삼으려고 한다면, 신나서 산책하는 개의 다리와 꼬리만한 것이 없겠죠.

Nude Descending the stairway

뒤샹 역시 1912년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Nude Descending the stairway>를 그렸습니다. 입체파 그림들과 어딘가 비슷하다고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움직임을 그리려고 한 것이지만, 입체파 그림들의 개념과 맞닿는 지점이 있거든요. 움직임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전제합니다. 시간이 멈춘 순간에는 움직임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움직임을 그린다는 것은 2차원 평면의 캔버스에 시간의 흐름을 그린 것이죠.

the dream

피카소의 <꿈>이라는 작품을 보면 여성의 옆모습과 앞모습이 동시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조각난 ‘뷰’를 조립한 것이 입체파적인 그림의 특징입니다. 즉 입체적인 것의 차원을 분해해서 2차원의 평면에 펼쳐놓은 개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입체적인 어떤 것에 대한 여러 각도를 평면을 통해 동시에 보게 만든 것입니다.

실제로 입체적인 사물의 여러 각도를 동시에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여러 각도로 본다는 것은, 관찰자가 ‘움직이면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대상의 모습을 것을 보는 것입니다. 대상의 다양한 모습은 보는 사람의 운동을 전제해요. 고전주의 화가들이 한 각도를 정해서 정지된 순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선형 원근법까지 개발했는데, 그걸 이렇게 무너뜨려 버린 거죠.

그런데 왜 이들은 ‘속도’나 ‘여러 각도’를 그리려고 한 것일까요?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것이 기계 시대, 기계의 미학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차 정도의 속도에 익숙해있었던 사람들은 증기기관차를 타게 되었고, 철근 콘크리트 덕분에 까마득히 높은 마천루에 올라가 볼 수 있었습니다. 기관차가 체험하게 해 준 놀라운 속도, 그리고 그에 따라 잔상으로 휙휙 지나쳐버리는, 한 순간에 여러 모습이 다 보이는 듯한 세계. 그리고 생소한 부감샷.

기계시대의 세계는 분명히 이전에 보던 세계와 달랐던 것입니다.

1)바우하우스는 근대 디자인 개념의 원형을 구축한 곳입니다.

이 애견까페와는 다른 곳이예요.

이 애견까페와는 다른 곳이예요.